여성취향의 포르노

November 19th, 2003

여성 취향의 포르노라면야

‘정말 우연이었어요. 남자친구가 자취하는 집에 맥주와 치킨을 사들고 놀러갔지요. 문이 열려 있어 놀려줄 생각으로 살금살금 들어갔어요. 근데 안에서 웬 여자의 신음 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거예요. 문을 열어보니 글쎄, 남자친구가 이상한 포르노 비디오를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고 있지 뭐예요. 이상하게 화가 나더라고요. 남자친구는 바람을 피우다 들킨 사람 같았고, 저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어요.’(닉네임 딸기공주)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남편은 섹스할 때 아예 대놓고 포르노를 틀어놔. 다른 여자의 엉덩이에 흥분하고, 난 몸만 빌려주는 거지. 이용당하는 기분이야. 첨엔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울기까지 했는데, 남편은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르는 거야. 지금? 포기한 지 오래야. 남자들은 원래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닉네임 영산댁)

남자치고 포르노 영화 한번 안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여자들은 이렇게 남편이나 남자친구의 취미활동(?)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몸은 피곤하고 성욕은 가시지 않을 때 포르노 한 편이 주는 빠른 쾌감의 기능을 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필자 역시도, 내 남자가 다른 여자의 몸을 보며 흥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남편이 보는 것은 ‘정신적 외도’라는 생각은 확실히 모순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던가. 덧붙여 남편의 취미활동이 못 마땅한 이유를 하나 더 들자면 포르노물은 대부분 지극히 남성의 취향에 맞춰져 있고 여성에 대한 부당한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포르노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는 대부분 몸매가 좋기 때문에 딱 붙는 가죽옷 등을 입어도 맵시가 난다. 더군다나 잘록한 허리와 다리에 비해 그들의 가슴과 엉덩이는 얼마나 ‘빵빵’한가. 도발적인 표정과 자극적인 신음 소리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그들은 목젖이 닿아 오바이트가 쏠릴 정도로 펠라치오를 하고 두서너 명의 남성에게 한꺼번에 혹사당하기까지 한다.
그들의 신음 소리는 쾌감이 아닌 고통에서 나오는 것임이 확실한데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그들은 최선을 다해 흥분을 연기한다. 도발과 순종! 그 양극단을 넘나들며 남성들의 환상을 마음껏 충족시키는 그들은 필자 같은 여자들에게는 연민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포르노를 보며 자위행위를 하는 남자들을 향해 ‘이, 짐승!’하고 화를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도발적인 모습을 흉내내려 애쓰는 것이다.
포르노 반대 운동을 하는 일부 여성운동가에게는 필자의 이런 주장이 무척 거슬릴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솔직히 ‘포르노를 없애자’는 운동이 실효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치아 건강에 좋지 않으니 초콜릿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범람해 있는 포르노물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면 없애자고 할 게 아니라 차라리 여성의 취향에 맞는 포르노를 직접 제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과장된 가슴이나 페니스가 등장하지 않고, 무리한 섹스나 일방적인 오럴 섹스도 없는 여성의 몸을 아껴주고 함께 즐기는 장면을 담은 포르노. 그런 영상물이 좀더 많아진다면 여자들이 굳이 포르노를 싫어할 까닭이 있겠는가.
하기야 포르노물 제작·유통이 불법인 나라에서 이런 발상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이연희(팍시러브운영자) foxy@foxylove.net 스포츠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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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남로당에서 포르노 관련 기사를 작성하던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며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포르노를 보였주었다는데, 처음에는 거부감(!)을 나타내다 나중에는 그냥저냥 같이 보게 되었다고 한다. 포르노 시청이 심한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나이도 아니고, 또 기사라는 목적도 있으니 특별히 문제가 생길 턱이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여자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된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길거리나 주변의 여자들에게 관심이 가고 그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게 되는것 같다고… 나도 모르게 주변여자들의 가슴을 훔쳐보거나 이상한 상상을 펼치게 되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포르노가 가지고 있는 남성중심적인 세계관이라는게 사실 겉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시각적, 감각적 쾌락의 뒷편에서 좀체로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특히 남자들은 포르노 속에서 문제의식을 찾아내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 속의 내용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이상향의 세계인 것이다. 예외적으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남자들에게는 동경의 대상, 혹은 질투의 대상이 될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부하지는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다수의 여성들이 포르노를 시청하는 남자들을 보며 위 기사에서 처럼 ‘짐승’으로 치부해버리는 행위다. 문제는 단지 포르노 시청이 아니라 그속에 담긴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남성들의 전유물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속에서 남자의 사고가 어떻게 고정화되고 뒤틀리는지 심각하게 고려해봐야할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취향의 포르노를 주장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 이런 심보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이제는 남성을 상품화 시키겠다는 의도가 다분한데, 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것이 본질인 것을 모르는 건지 의도적으로 비껴가는 건지 아리송하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 정도 이상의 논의에 대처할 자신이 없다.

아뭏튼 내가 생각하기에 포르노의 진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지나친 남성편향과 성의 상품화.
포르노 관람은 전혀 문제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로리타물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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