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December 16th, 2003

용의 비늘을 모두 세어 보기 전에는 용에 대항하여 소리내기를 삼가듯, 세계의 불행 앞에서 우리의 침묵을 그렇게도 쉽게 정당화해주는 그 알량한 과학적 엄정성으로 얼굴을 가리지 맙시다! 아무 편도 들지 않는다는 입장 표명은 언제나 가장 이빨 강한 자들에 이득이 되지요. 또 진지한 겉모습을 천처럼 두르고 다니는 조심성 많은 자들, ‘짐승’앞에서 입을 다물거나 짐짓 못 본 체하는 현자들과 신중한 자들, 이들 또한 그 짐승을 쓰다듬는 자들만큼 잘못이 있습니다. – 앙리 프레데릭 블랑 ‘잠의 제국’ 中

며칠동안 프랑스 소설에 푹 빠져 살았다. 식탁에서, 차안에서, 화장실에서 프랑스 소설은 온전히 내 삶의 방식을 지배했고 나는 몽유병 걸린 환자처럼 그 사이를 유랑했다. 프랑스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문장의 난해함, 특이한 것에 대한 집착을 끔찍히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그 몽롱함과 현학이 기분좋게만 들린다. 로맹 가리, 브뤼크네르, 블랑 또 몇몇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자꾸만, 자꾸만 활력이 솟아난다. 아련한 옛 생각과 함께 그 옛날의 기분까지 살아 오는 듯하다.

1일 1영화보기 운동에 매진하던 때처럼 2주일간 거의 10권의 책을 읽었다. 전부 프랑스 소설이다.(퍼시캉프의 경우는 잘 모르겠다.) 이제는 또 다른 살(生) 꺼리를 찾아봐야겠다.

One Response to “해방”

  1. 머무르기 Says:

    퍼시 캉프는 아마 영국인일 겁니다. 하지만 유럽쪽의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영어와 불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소설도 아마 불어로 출판해서 프랑스 소설이라 하는 걸 겁니다. 그의 소설은 한 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엠므씨의 향수, 맞죠? 어느 신문에선가 읽은 기억이 나네요. 그 사람 직업이 정치 컨설턴트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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