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January 20th, 2004

겨울에는 역시 눈이 내려야 제 맛이다. 오늘 내리는 눈은 반짝이는 눈이라서 가지고 놀기에는 알맞지 않지만 보기에는 좋다. 반짝거리는 것이 꼭 유리를 온 길에 뿌려놓 듯 이쁘다. 하지만 보기에는 좋더라도 길이 미끄러워지니 여기저기 위험한 사고의 순간이 목격되는데, 오늘 내가 탄 버스가 그랬다. 사람을 태우고 막 출발하려는 찰나에 앞에 있던 트럭(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렌지 한 상자에 5000원 하는 그런 트럭)이 갑자기 유턴을 시도하는 것이다. 컥~ 버스 기사분이 정말이지 놀라운 순발력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꺽는 바람에 다행이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버스는 중안선을 넘어 반대 차선에 거의 차체의 2/3가 넘어가 버렸다. 반대차선에 차가 달리지 않았길래 망정이지 정말이지 큰 사고 날 뻔했다. 일단 차를 다시 본래 차선으로 돌려놓고 앞문을 연 기사분, 입으로는 온통 거친 소리 뿐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느가. 흘깃 보니 아마 트럭 운전수가 나와서 이쪽으로 오나 보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곧 벌어질 싸움을 잔뜩 기대했다. 드디어 앞문에 온 트럭 운전수 등장. 두둥~ 개봉 박두. 그런데…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차가 눈 때문에 브레이크가 안 먹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연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초로의 아저씨. 버스 기사의 그 전투의지는 이미 거기서 한 풀 꺽여버렸는지, 에이씨~를 연발하다가는 결국 “네,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럽네요. 조심하셔야죠..” 뭐 결국 이렇게 시시하게 일단락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그리고 문을 닫을때는 “설 연휴 잘 쉬세요” 서로 덕담가지 나누는 화기애애모드. 오늘의 에피소드.

착하다는 말을 들었다. 설마?
생각해보면 요 몇년간 싸움 비슷한 걸 해 본 기억이 없다. 아니 기억이 온전한 부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그렇게 심하게 싸우거나 화를 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맹물같이 살고 있는 거지? 나는…

One Response to “에피소드”

  1. 차차 Says:

    흠…….가끔은 겐시리 시비거는맛도 잼있어요 ㅋㅋㅋㅋ
    그렇다고 ㅡ,.ㅡ;; 괜한사람한테 시비걸믄 피보죠? ㅋ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