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anted Books from No-Smok’s kz
November 12th, 2003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
마술팬티
코인로커 베이비스(버려진 아이들의 반란)
어제 책을 주문하면서 참 오랫동안 책을 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더군. 읽고 싶은 책을 찾기 힘들다는 별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 때문인데, 요새 읽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몇몇 글들을 발견했다. No-Smok는 지적 호기심을 발생시키고 뻥튀기하는데 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박식함에 놀라곤 한다. 그 잡다한 – 때론 지적 허영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또 가끔은 그 깊이에 놀라기도 하는 – 지식들에 주눅이 들 정도이긴 하지만 ‘르네상스맨’이라, 재미있군…
예전부터 알아왔지만, 요즘에 보는 No-Smok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상황이 변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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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도둑 – 프레드릭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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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팬티에 실려있는 단편들 중 하나)
미들랜드 시의 경찰서장은 닥스훈트 개를 두 마리 기르고 있었다.
한 마리는 리틀 노트, 또 한 마리는 롱 리멤버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사실은 고양이나 고양이 도둑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언뜻 보기에 알 수 없는 연속 도난 사건 – 요즘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단독범행 – 에 골치를 앓고 있는 서장과 관계있는 이야기다.
그 도둑은 2,3주일 동안에 19채의 단독주택과 아파트에 숨어들었다. 도둑이 미리 신중하게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확실했다. 왜냐하면 도둑이 들어간 집에는 꼭 고양이가 있었는데, 이것은 반드시 우연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둑은 고양이만을 훔쳐갔다. 어떤 때는 돈이, 또 어떤 때는 보석이 바로 옆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도둑은 그런 것에는 전혀 무관심했다. 밖에서 들어온 집주인은 창문과 문이 열려있고, 고양이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 밖에는 아무것도 도둑맞은 것이 없었고, 또 어질러놓은 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 이런 사건은 누구나 웃음거리로 여기겠지만 – 신문이나 세상에서는 이 범인을 ‘고양이 도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스무번째 절도에서야 범인을 잡게 되었다. 신문의 도움을 얻어 경찰은 함정을 파 놓았다. 가까운 거리의 고양이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샴 고양이를 그 주인이 데리고 돌아왔다고 공표한 것이다. 그 고양이는 쇼에서 최고 혈통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특상에도 입선했다.
그 기사를 아름다운 고양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나자 경찰은 곧 그 집을 포위하고 일부러 주인을 남의 눈에 띄게 외출을 시켰다.
그리고 나서 겨우 두 시간 뒤에 그 도둑이 나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도둑이 샴 고양이를 옆구리에 끼고 나오는 현장을 힘 안들이고 붙잡았다.
도둑은 경찰에서 심문을 받았다. 서장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자리를 함께한 여러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기가 막히게도 그 도둑은 이상하고 특수한 자기의 범행 동기를 아주 조리있고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물론 경찰은 그를 석방하지 않고 재판에 넘겼는데, 아주 가벼운 형을 받았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고양이를 입수하는 수법은 위법이었지만, 그 목적은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에 재판장도 동감했기 때문이다.
범인은 아마추어 과학자였다. 그런데 그의 연구를 위해서는 고양이가 필요했다. 그는 훔친 고양이는 집으로 가져가 안락사를 시켰다. 그리고 고양이를 조그만 특제 화덕에 넣어 화장했다. 이리하여 얻은 고양이 재를 항아리에 넣어 두고 그 재로 실험을 거듭했다.
그는 그 가루를 곱게 또 거칠게 여러 가지 형태로 빻아서 처리방법을 각기 달리한 다음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인스턴트 고양이 만드는 법을 발견하려고 했던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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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달라진 걸까?
One Response to “Wanted Books from No-Smok’s 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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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nnel Vision
November 11th, 2003
사람들이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때는 문제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가 없게 된다. 위협을 경험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아를 방어하게 되고 Tunnel Vision에 빠지게 된다. 즉 위협해 오는 대상에 대한 그들의 지각의 범위는 더욱 좁아지게 된다. 위협과 그 효과, 자기 방어의 필요성, 그리고 지각의 협소화는 진행중인 갈등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결국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자신이 읽고 싶은 것만 읽고,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난다. 그러면서 그것이 전부라고 믿게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http://www.trans4mind.com/transformation/transform2.13.htm#Tu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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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적의 솔로부대다
November 11th, 2003
3 Responses to “우리는 무적의 솔로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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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Says:
November 11th, 2003 at 2003-11-11 | pm 08:22‘빼빼로 데이’ 따위의 공격에 무너지지 말자. 다음달엔 성탄절대전투도 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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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기 Says:
November 12th, 2003 at 2003-11-12 | am 02:15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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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Says:
November 15th, 2003 at 2003-11-15 | pm 12:20아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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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I 와 GeForce
November 10th, 2003
ATI & GeForce & S3Savage32 & Voodoo3 3000
Samsung, Hyundai, Daewoo Monitor
무슨 말을 더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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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에 관한 상념(想念)
November 9th, 2003
요즈음에 군대 시절 적은 일기를 들춰보면 당시의 고단했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작업, 뺑이, 교육, 무료함 등등 그 시절의 일상과 함께 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책에 관한 글들이다. 무슨 책을 읽었고, 어떤 느낌이었으며, 세간의 평은 어떠했는지 비교적 소상하게 적어놓은 기록들은 당연히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되거나 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삶의 흔적들이다.
Blog에 글이 60여개가 넘어가면서 왠지 영화 이야기에 치중하는 듯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경향이 무슨 문제가 될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가끔 그런 사실에 어떤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를 무의식중에 행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또 새로운 전기를 이쯤돼서 한 번 마련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렇다.
홈페이지를 Blog로 바꾸고 나서 기존의 정적인 홈페이지에 비해 월등하게 활발한 것이 사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미디어라는 Blog의 특성상, 굳이 누구에게 읽히거나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존재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좀 더 내 안으로 들어가서 정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남에게는 그렇게 충고도 잘하고 번지르르하게 위로도 잘 하면서 아직도 마음속에 있는 것을 모두 쏟아부을 수가 없다. 하루키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아는 것의 반 밖에 말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듯하다. 반쪽의 삶이 고단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보기에 매우 간사하다.
군대 시절, 책이 당시 고단했던 일상의 도피처였다면 지금은 영화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영화를 보며 시간을 때우고, 그 감상을 적으며 고민하고, 그러면서 안목은 깊어간다고 뿌듯해하는 이 유아적인 발상이 얼마나 우스운가 말이다. 시간이 지나 나중에 Blog의 글들을 보면 또 삶의 흔적을 운운하겠지. 유치하게…
뭐 구차하게 비관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이것도 생활의 일부일테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일테니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수 밖에… 단 매저키스트가 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생각해 보니 한 명을 제외하고는 Off-Line 에서 나를 아는 사람중에 이 페이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행복한가? -yes
PS> The-Brights 에 관해 좀더 숙고해 볼것.
http://no-smok.net/nsmk/TheBrights
http://www.the-brigh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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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November 8th, 2003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짓이 전혀 아닌 것 같다. 하루에 영화 두편이라니… 게다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와 함께 다른 영화를 본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도대체 누가 저지를 만행이란 말이냐? 다행히도 깝스가 아주 아주 유쾌했기에 망정이지 만일 어제본 스위밍 풀이었다면 아마 난 미쳐버렸을 것이다.
킬빌은… 음.. 뭐랄까? 폭력의 미학이라고 해야하나? 팔다리가 잘리고 머리가 잘려나간 자리에서 피분수가 솟구쳐 오르고, 영화 내내 폭력만이 가득하다. 스타일은 물론 멋있다. 언젠가 본 ‘아들을 동반한 무사’에서처럼 폭력이 아름답기만 하다. 타란티노 같은 멋있는 감독은 대개 무엇을 해도 멋있긴 한데, 이번것도 기대치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독설과 냉소, 그리고 폭력… 누구는 서투른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라는 표현으로 혐오감을 표현하긴 했지만, 글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이라… 단정할 수가 없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액션신들은 동양무술의 신비에 혹한 모습보다는 그의 폭력을 좀더 과격하게(?) 혹은 보다 전면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소품정도라고 하면, 이것도 좀 지나치겠지…?
그나저나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 것은 우마 서먼이 아닐까? 심리묘사도, 고뇌에 찬 모습도 없는 단순히 칼만 휘두르는 모습이 이처럼 멋있다니, 굉장하다.
깝스는 정말 웃기다. 정말정말 웃기다. 마지막까지 웃기다. 결정적으로 그 웃음은 억지로 쥐어짜는 웃음이 아니라 아주 유쾌한 웃음이다. 아마 누구라도 영화를 보고나면 행복해질 것이다.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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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와 오종
November 8th, 2003
어디까지가 하늘빛이고 어디까지가 물빛인가? 아마 이 카피 이상으로 이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을 듯하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이란 말이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영화. 이리저리 생각하고 짐작하고, 집중하고 마침내는 그 오묘한 반전을 이해한 후 나온 한마디, “제기랄~ 오종녀석!”. 아마 헐리우드식의 직관적이고 직설적인 반전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짜증날 법도 한데, 그래도 오종이라 봐 줄 수 있다. 장난꾸러기라는 세간의 평도 그렇거니와 경애하는 나의 친구 “이기연”이 가장 좋아하는 오종의 영화는 이전에 보았던 ‘8 Femmes’ 에 이어 두번째다. 언제 단편들을 구해서 보고 싶긴 한데 레어 아이템인 듯, 쉽게 구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하루에 두편을 보니 정신이 몽롱한게, 아마 이해를 늦게 한 것도 이 몽롱함의 영향을 받은 건지 모르겠다.
2 Responses to “프랑소와 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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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Says:
November 11th, 2003 at 2003-11-11 | am 03:12왕~~섹쉬하당~~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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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Says:
November 11th, 2003 at 2003-11-11 | pm 08:30영화에서는 더더더 섹쉬하다는 -o-;;
November 12th, 2003 at 2003-11-12 | pm 11:07
오늘은 아침부텀 출근도장 쾅! 쾅! 쾅! -o-;;
덕분에 소설 한 편까지 꿀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