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단순히 늙었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늙었음을 이제야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니 늙었다는 극단적인 표현은 좀 자제하고 나이가 먹었음을, 이제 더이상 어린애가 아님을 뼈저리게 자각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런지…

술과 담배와 스트레스와 먼지의 틈바구니 속에서 지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모습을 돌볼 시간도 여유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내 상태가 어떨지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살아왔다. 말로는 예비군도 마친 늙다리 인생입네, 학교에는 10년 터울의 후배가 있네 하면서도 정작 내 나이가 주는 무게감을 느끼지는 못하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며칠 전 새벽 화장실에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문득 내가 정말 늙었구나 하는 사실을 절감했다. 푹 파인 퀭한 눈, 거칠어진 피부, 깊게 파인 볼우물, 여기저기 늘어난 주름살…. 이루 말로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고 다양한 늙음의 증거가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일상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들이 늘어났다고 자위해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리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나도 알고, 하늘도 알고, 거울도 알고, 버스카드도 알고 있다.

정말이지 나이가 먹었다는 것이 이렇게 슬프게 다가온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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