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her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나는 생각하는 곳에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곳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 라캉

사이퍼를 이야기하기 전에 큐브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영화 광고에 항상 ‘큐브의 감독’이라는 설명이 친절히 따라다니는데, 단순히 동일 감독의 작품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영화의 메타포에 주목하면 영화를 이해하는게 보다 더 수월해지는 점도 있다.

인간은 자신의 주체를 언어를 통해 형성하게 된다. 언어를 통해 형성된 주체는 당연히 언어를 벗어날 수 없게 되고 결국 언어적 구조물에 같히게 된다. 영화 큐브에서 큐브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 언어적 구조물이다. 이것은 누군가의 음모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인간의 주체는 이미 언어에 꿰뚫어져 있는 것이다.(S+/)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가 바로 그 언어에 의해 만들어진 주체다.
그런데 시니피앙은 시니피에에 닿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큐브에 의해 만들어진 주체는 결코 큐브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이퍼에서 큐브는 계속 뒤틀리기 시작한다. 큐브를 벗어난 주체에 닿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속 주체를 형성하지만 빨간약은 계속 시니피에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영화를 보면서 메타포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고, 또 놓친다 하더라도 영화가 재미없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이퍼를 통해 굳이 심오한 철학적 궤변을 늘어놓느니 그 반전에 반전, 속임과 속임의 반복 속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큐브의 존재를 인정하건 안하건 어차피 우리는 큐브속에 살고 있으니까.

정리가 안되는 건, 이미 내가 라캉과 데리다로부터 너무 멀리 와서 인가? 오랫만에 생각해 볼 좋은 영화를 봤다. 그러나 타인의 생각이 덕지덕지 들러붙어버린 감상은 왠지 초라함 뿐이다.

3 thoughts on “cypher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1. sys햏과 말할때는 별로 느끼지못하는건데…. 써놓은 글을보면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듯하구료…. 글참 잘쓰오… 그나저나 못본지 꽤 오래되었구료…. 감기조심하고 월급타면 한번 쏘시오~ 햏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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