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참 찌질하다.

당신의 인생에서 발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그 문제성 있는 것을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방식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삶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당신의 삶이 삶의 형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이 그 형태에 맞게 되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는 (한편) 삶 속에서 문제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뭔가 중요한 것, 아니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거라는 느낌을 갖지 않는가? 그런 사람은 그저 그냥 살고 있는 거라고-말하자만 두더지처럼 맹목적으로 사는 거라고, 그리고 만일 그가 볼 수 있다면 그는 문제를 볼 거라고, 이렇게 나는 말했으면 하지 않은가? 또는 나는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는가; 올바로 사는 사람은 문제를 슬픔으로, 그러니까 문제로 느끼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느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의 삶을 둘러싼 빛나는 정기(에테르)로 느끼지, 문제성 있는 배경으로 느끼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

작금의 잠못 이루는 모든 사태는 그사람에 대한 나의 오해와 착각과 과대망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이해 하지 못할 것이고, 나는 더욱 비참해질 것이다. 오전, 오후 한두시간 정도 같은 공간을 소비하는 것 외에 그사람은 나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비록 내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기를 바랄지라도- 현실이다. 어차피 이 찌질한 삶에 누가 눈길한번 주겠는가 말이다. 찌질하면서도 널럴한, 한편으로는 짭짤한 이 생활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면 헛된 기대는 하지 말자. 하지만… 당분간은 대하기 껄끄럽겠다. 마이 미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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