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헛살았군…

멀리 가래비에 장이 선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갑작스런 어머님의 성화에 동생이랑 팔자에도 없는 장구경을 가게 되었다. 구경이라기 보다는 사실 어머님이 꼭 사야 할게 있어서 우리 둘은 들러리 겸 머리도 식힐겸 따라나선 것이지만… 또 그 먼길을 당신 혼자 버스타고 다녀오시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충 옷을 차려입고 차를 몰고 나오면서 기름을 넣으려는데 바로 집앞 주유소에 내부수리중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출입구가 막혀있는 것이다. 집에서 가깝고, 무엇보다 시내로 나가는 방향이기 때문에 거의 이 주유소를 이용하는데 엊그제만 해도 별 이야기 없더니만 수리중이라니, 아니 수리중이라도 그렇지 뭐하러 출입구 까지 막고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동생하고 조잘대는데 어머님의 한 마디. ‘수리중은 무슨, 단속 맞아서 영업정지 먹은거지. 양을 적게 줬거나, 다른거 타서 정지먹은 거야. 앞으로 여기는 다니지 말아야 겠다’
일순간 동생하고 멍~ 하니 있다가, 맞어 그럴거야. 내부수리하는데 출입구를 막을 이유가 없지, 먼 잘못을 했길래 정지를 먹었을까? 왜 그런 생각은 꿈도 못꿨을까? 나의 통찰력은 결국 현상적인 것에만 머물러 있는 것인가? 세상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 세상을 착하고 순진하게 살아온 것도 아닌데…

그 먼 길을 달려 장에서 사온것은 콩, 팥, 수수등 잡곡. 굳이 그 멀리까지 가지 않았도 살수있지만 시장에서 사는건 싸긴 한데 모두 중국산이라 맛이 없으시단다. 여기는 정말 집에서 기른거 내다 파는거라 좀 비싸긴 해도 훨씬 맛있다고, 물에 담궈놓으면 색깔부터 틀리고, 밥을 해놓으면 윤기가 난다는 어머님 말씀. 덕분에 계속 맛있는 밥 먹을 수 있겠군. 좋다. 어쨋든 지금까지 세상 헛살았으니 참으로 난감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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