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상실

싸움터에 나가는 장수에게 상대를 꺽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그 장수의 앞날은 불보듯 뻔하다. 이런저런 구차한 이유들을 한덩어리 짊어지고서 아무런 의욕도 없이 일하고 있는 내 신세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장수의 그것과 너무 닮았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과,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 모든 방향에서 들이대는 일들틈에서 몸만 하루하루 축난다.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책임은 커져만 가고, 삶은 삶대로 피폐해 가는 이 민망한 상황속에서 또 하나 정리하지 못하는 일때문에 미치겠다. 아니 ‘정리’라는 말은 옳은 표현이 아니다. 아직 시작하지도 못한 일이니까. 밥이 되든 죽이 되는 밀고 나가봐야 할텐데, 딱 2g의 용기가 부족하다. 이 소심하고 무능한 성격은 아마 내 스스로 생각해도 전혀 맞을 사람은 아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더 우울하다.

무의미하게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은 돌이켜 보면 후회만 남을 것이다. 스스로를 저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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