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든 대로 살아봤응께…

“부사령 동지, 총알이 떨어졌구만요!”
어느 대원의 다급한 소리였다.
“서로 나누어 쓰시오. 함부로 쏘지 말고 한 놈씩 정확하게 겨냥하시오.” 염상진은 가늠구멍을 들여다본 채 지시했다.
“총알이 다 떨어졌는디요.”
뭣이! 그 순간 염상진은 방아쇠를 잡아당기고 말았다. 그 총알이 적을 향해 제대로 날아갔을 리가 없었다. 대원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대원들은 총알이 없으면서도 원형을 이룬 형태로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염상진은 자신의 탄띠를 살펴보았다. 탄창 두 개의 수류탄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는 탄창 두 개를 허물어 네 대원에게 네 발씩 나눠주었다.
“이게 마지막이오. 한 발씩 정확하게 겨냥해서 쏘도록 하시오.” “세 발씩만 쏠께라?”
한 대원이 물었다. 그 말은 곧 한 발씩은 남겨야지요? 하는 말이었다. 염상진은 대원들을 휘들러보았다. 네 명이 모두 입을 꾹 다문 얼굴들이었다. 그 얼굴들이 평소의 얼굴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금방 느꼈다.
“네 발씩 다 쏘시오. 이게 남아 있으니까.”
염상진은 수류탄을 내보였다. 대원들은 더 말없이 적을 향해 몸들을 돌렸다.
염상진은 적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한 번, 두 번, 빈 탄창이 튕겨나왔다.
더 쏠 총알이 없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총알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도 방아쇠를 두 번씩만 더 당기면 빈 총이 되는 것이다. 그는 빈 총의 가늠구멍을 통해 몰려오고 있는 적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침내 왔구나! 이젠 가야지! 그는 어금니를 꾸욱 물었다. 문득 아들 광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새벽공기 같은 맑고 시원한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려왔다.
“아부지, 나도 싸게싸게 커서 아부지맹키로 훌륭헌 사람이 될라요.”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머니의 얼굴이, 아내의 얼굴이, 딸의 얼굴이 겹쳐지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생각해냈다. 얼른 왼쪽 윗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날 어머니가 주셨던 돈이 손끝에 잡혔다. 그는 돈을 매만져보고 손을 빼냈다.
“부사령 동지, 총얼 다 쐈구만이라.”
뒤에서 들린 말이었다. 염상진은 몸을 돌렸다. 그는 대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나갔다.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에는 찬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때 아래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염상진, 염상진 들어라. 우린 네가 염상진인 것을 알고 있다. 총알이 다 떨어졌으면 부하들 데리고 자수하라. 자수하면 선처를 보장한다. 이젠 전쟁도 끝난 지가 오래다. 잘못 생각해서 부하들 불쌍하게 죽이지 말고 어서 자수하라. 자수하면 틀림없이 선처하겠다. 앞으로 오 분간의 여유를 주겠다.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
염상진은 적이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것에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았다. 누군가의 입으로 비트가 노출된 이상 이름이 밝혀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동무들, 다 같이 앉읍시다.”
염상진은 바위들을 은폐삼아 서 있는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염상진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대원들이 뒤따라 둘러앉았다. 총소리들에 쫓겨갔던 산의 적막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있었다. 그 두껍고 깊은 적막 속에 그들 다섯은 바윗덩어리인 듯앉아 있었다. 마침내 염상진이 입을 열었다.
“동무들, 저자들이 떠드는 소리 다 들었지요? 투쟁을 끝낼 때가 마침내 우리 앞에 왔소. 동무들은 투쟁의 마지막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다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러나 적들이 저렇게 떠들어댄 이상 나는 동무들에게 당의 원칙을 강요하고 싶지 않소. 이 마당에 여러분의 마지막을 여러분들 스스로가 솔직하게 결정하기 바라겠소. 저자들의 말을 듣고 자수하겠다면 가도 좋소. 자아, 백 동무부터 돌아가면서 말해보시오.”
염상진의 말이었다.
“지넌 여그서 죽겄구만이라.”
“개덜얼 믿느니 경상도 디딜방아럴 믿겄소.”
“더 살아서 헐 일도 웂구만이라.”
“하먼이라, 다 항꾼에 가야제라.”
“동무들, 다들 장하시오!”
염상진의 감격어린 목소리였다.
“염상진 들어라아, 이 분 남았다아!”
아래서 들려오는 힘찬 목소리였다.
“자아 동무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한 마디씩 하시오.” 염상진이 수류탄을 손아귀에 잡으며 말했다.
“머시냐, 바라든 대로 살아봤응께 원도 한도 웂구만이라.” “나도 더 바랠 것이야 웂는디, 새끼 한나 있는 것이 눈에 볿히요.” “나도 후회헐 것 아무것도 웂소.”
“나넌 따로 헐 말 웂고, 그저 부사령 동지 뫼시고 죽은께로 영광이오.” “동무들, 나도 동무들 같은 당당한 전사들과 함께 죽으니 아무것도 더 바랄 것이 없소. 그저 영광스러울 뿐이오.”
염상진이 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의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삼십 초 남았다아, 삼십 초!”
“동무들, 우리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합시다.”
염상진이 팔을 벌렸다. 네 사람도 양쪽 팔들을 벌렸다. 그리고 그들은 어깨동무를 했다.
어깨동무를 하게 되자 그들의 간격은 자연히 좁혀 들었다. 수류탄을 든 염상진의 오른손이 그들이 만든 동그라미 가운데 놓였다.
“동무들, 우리 다 같이 만세를 부릅시다.”
염상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입으로 수류탄의 핀을 뽑았다.
“인민공화국 만세에…”
꽝!

무뎌진 건지 희미해 진건지 모르겠는데… 감흥이 없어,. 감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