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할 수 있는 몇가지 행동

비오는 날 할 수 있는게 생각만큼 많이 없더군…

1. 비를 맞으며 거리를 쏘다니기
2. 막걸리에 사이다 섞어 먹기
3. 빗소리 들으며 화려한 첫사랑을 추억하기
4. 김윤아 노래를 들으며 처량하게 누워있기
5. 테레비 보기
6. 소주 마시기
7. 열심히 일하기
8. 밀린 빨래와 설겆이 하기
9. 사랑을 속삭이기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

6번 당첨!!! ㅜ.ㅜ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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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인하여, 성석제 보다는 임영태에게 뭔가 아스라한 애틋함을 느끼는 편인데 아주 가끔씩 성석제의 글들이 생각나는 날이 있다. 오늘처럼 인생을 뜨믄뜨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

간결하고 깔끔한 성석제의 문체는 아주 가끔씩 이상한 건조감을 느끼기는 해도 역시 좋다. 아마도 그 건조함은 절묘한 균형감각에 기초를 둔 통찰력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런거야 아무래도 좋다. 성석제라는 이사람, 진짜 술집에 마주 앉아 술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 하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 스타일…

보고싶다. 그사람.

사랑은 끝이 없다네

– 박노해

사랑은 끝이 없다네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그대가 내 마음속을 걸어다니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강을 건너서도
그대가 내 가슴에 등불로 환하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대 이름만 떠올라도
푸드득, 한 순간에 날아오르겠는가

그 겨울 새벽길에
하얗게 쓰러진 나를 어루만지던
너의 눈물
너의 기도
너의 입맞춤
눈보라 얼음산을 함께 떨며 넘었던
뜨거운 그 숨결이 이렇게도 생생한데

오늘도 길 없는 길로 나를 밀어가는데
어떻게 사랑에 끝이 있겠는가

시린 별로 타오른 우리의 사랑을
이제 너는 잊었다 해도
이제 너는 지워버렸다 해도

내 가슴에 그대로 피어나는
눈부신 그 얼굴 그 눈물의 너까지는
어찌 지금의 네 것이겠는가

그 많은 세월이 흘러서도
가만히 눈감으면
상처난 내 가슴은 금세 따뜻해지고
지친 내 안에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해맑은 소년의 까치걸음이 날 울리는데
이렇게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걸
내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어찌 사랑에 끝이 있겠는가

사랑은 끝이 없다네
다시 길 떠나는 이 걸음도
절망으로 밀어온 이 희망도
슬픔으로 길어올린 이 투혼도
나이가 들고
눈물이 마르고
다시 내 앞에 죽음이 온다 해도
사랑은 끝이 없다네

나에게 사랑은
한계도 없고
머무름도 없고
패배도 없고
사랑은 늘 처음처럼
사랑은 언제나 시작만 있는 것

사랑은 끝이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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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단순히 늙었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늙었음을 이제야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니 늙었다는 극단적인 표현은 좀 자제하고 나이가 먹었음을, 이제 더이상 어린애가 아님을 뼈저리게 자각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런지…

술과 담배와 스트레스와 먼지의 틈바구니 속에서 지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모습을 돌볼 시간도 여유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내 상태가 어떨지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살아왔다. 말로는 예비군도 마친 늙다리 인생입네, 학교에는 10년 터울의 후배가 있네 하면서도 정작 내 나이가 주는 무게감을 느끼지는 못하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며칠 전 새벽 화장실에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문득 내가 정말 늙었구나 하는 사실을 절감했다. 푹 파인 퀭한 눈, 거칠어진 피부, 깊게 파인 볼우물, 여기저기 늘어난 주름살…. 이루 말로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고 다양한 늙음의 증거가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일상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들이 늘어났다고 자위해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리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나도 알고, 하늘도 알고, 거울도 알고, 버스카드도 알고 있다.

정말이지 나이가 먹었다는 것이 이렇게 슬프게 다가온 것은 처음이다.